A Dear John Letter
[시], [곡] 빌리 바턴 (Billy Barton), 루이스 톨리(Lewis Talley) / 1949,
퍼지 오언(Fuzzy Owen) / 1953
[오리지널 히트] 1953 진 쉐퍼드 & 펄린 허스키
(Jean Shepard & Ferlin Husky) / Pop # 4, C&W #1
[리바이벌 싱글] 1953 팻 오데이 & 포어 호스맨 (Pat O’Day & the Four Horsmen) / Pop # 17 1960 팻 부운 (Pat Boone) / Pop # 44 1965 스키터 데이브스 & 바비 베어 (Skeeter Davis & Babby Bare) / C&W # 11
[커버 버전] 루이스 톨리, 어네스트 텁 & 로레터 린
'A Dear John Letter'는 사랑하던 사람과의 결별을 전하는 절교의 편지를 노래했다. 이 노래는 1949년에 빌리 버턴에 의해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에서 만들어 진 센티멘털한 노래다.
빌리가 '클로버 클럽'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들은 루이스 톨리가 곡을 다듬었고 퍼지 오언이 판권을 사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53년에 진 쉐퍼드와 펄린 퍼스키의 컨트리 듀오팀이 최초로 리코딩했다.
캐피털 레이블로 낸 싱글이 9월 5일에 컨트리 차트에서는 1위까지 올라 연속 6주동안 탑을 장식했다. 5 달 동안이나 베스트 셀러가 되는 동안 팝 차트에도 크로스 오버 되어 4위까지 치솟는 Top 5 의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그 속편에 해당하는 'Forgive Me, John'을 내어 24위까지 오르는 드라마틱한 토취 송 시리즈를 냈다.퍼린 허스키 는 베이커스 필드를 바탕으로 성공한 컨트리 가수이자 작곡가이고,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에 배우이며 커미디언으로 명성을 가진 만능 예인이다.
1927년 12월 3일 미주리 주의 히코리 크로브에서 케리 프레스톤(Terry Preston)으로 출생했다. 1947년. 미 해병대에서 제대한 직후에는 세인트 루이스 로 돌아와 홍키 통크 바에서 커미디와 노래를 불렀고, 1949년 베이커스필드 로 옮겨서는 레디오의 DJ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몇곡의 레코드를 냈지만 사오년동안은 클럽가수와 하우스 커미디언으로 족해야 했다.
이때 예명을 퍼린 허스키(Ferlin Husky)로 바꾸었다. 이무렵 베이커스필드에서는 매닥스 가족(The Maddoxes & Rose)을 비롯해서 컨트리 사운드가 형성되고 있었다. 49년에 미주리 출신인 윈 스투어트에 이어, 52년에는 오클라호마 시티 출신 타미 콜린스 가 합세했다. 그리하여 퍼린 허스키, 벅 오언스 그리고 머얼 해거드 등과 함께 베이커스필드 컨트리 왕국의 파이어니오로 토대를 다졌다. 1953년에 캐피톨 레코드 레이블에서 퍼린 허스키는 진 쉐퍼스와 듀오로 ‘A Dear John Letter’를 내게 된 것이다.
허스키는 1953년부터 75년사이에 51곡의 싱글 히트곡을 냈는데 그 가운데서 1957년에 재취입한 오페라 아리아 풍의 밸러드 'Gone' 과, 1960년에 낸 가스펄 넘버 'Wings Of A Dove'가 우리와 친숙한 노래다. 'A Dear John Letter'의 리바이브는 60년대에 2곡이 나왔다.
먼저 팻 부운이 ‘Dear John’으로 부른 커버가 1960년 10월 24일에 팝 차트에서 79위로 데뷔 하여 11월 28일에 44위까지 피크 되는 제1차 리바이벌을 기록했다. 이어 65년에는 스키터 데이비스와 바비 베어 의 듀오 쏭이 컨트리 차트에서 11위까지 오르는 리바이브 히트를 올렸다.
한편 "Dear John Letter"라는 말은 제2차세계대전 와중에 군인들 사이에서는 ‘로맨스 관계의 청산을 알리는 절교편지’를 뜻하는 슬랭으로 쓰였다. 그리고 지금도 "Dear John"은 군복무중이거나 복역중인 남자에게 대하여, 여자가 절교를 알리는 슬랭으로 응용되고 있기도 하다.
"사랑하던 잔이여...." 사랑하는 사람이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그 애인의 동생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 얄궂은 운명을 노래한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잔에게 쓰디쓴 가슴을 달래며 절교의 편지를 읽는 쟌의 음성이 떨리고 있다.
이 노래는 1953년 한국전쟁의 종전을 앞당기는데 일조 했다고한다. 국내에서는 남궁옥분 이종환의 보고픈 내친구로 소개되었다.
글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joba님 2005.11.15. |